최근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습니다.
영화를 감상하고 후기를 남길 때 고려하는 점이 스토리보다는 연출일 정도로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영상미를 정말 좋아합니다
언제 지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아닐 수 있음), 영화를 보니까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선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표면적으로는 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그들과 함께 성장합니다. 단순한 인물 간의 대립과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이야기를 넘어서서 당신들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후기를 쓰며 사람들의 다양한 후기들을 찾아보고 참고했는데 이번 영화는 사람마다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부분을 중심적으로 봤는지에 따라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더라고요. 특히 영화 스토리텔링이 불친절하고 의도가 다 드러나지 않아서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컸는데 그런 점이 오히려 영화의 제목처럼 물음을 던져놓고 가는 느낌이 들어서 저에게는 좋았습니다. 무슨 소재를 연결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첨언하자면 최근에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를 다시 봤는데 이전의 지브리 작품들도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런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관객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좋았습니다. 물론 이전의 영화들은 독보적인 캐릭터성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많았고 사실 이번 영화가 스토리텔링에 불친절한 느낌을 준다는 의견에 동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외에 다른 요소들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살아가라는 말은 "당신은 아름다워"(〈모노노케 히메〉)서 하는 말이 아니며, 오히려 당신의 모든 경험을 감내하고 책임지되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요청이다. 바로 그 요청을 마히토는 힘껏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어쩌지 못할 곧 몰락할 세계라도 해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거기로 가겠다는 용기, 탈정치적 비관을 넘어선 정치적 낙관의 용기. 이 작품에서 아름다운 게 있다면 바로 그 용기일 터이다.
[윤아랑 칼럼] 적극적인 물러남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예스24 채널예스
아마도, 2023년을 통틀어 가장 오해받고 있는 예술작품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일 것이다.
ch.yes24.com
이어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단 하나의 영화를 추천할 수 있다면 이터널 선샤인을 뽑고 싶어요. 로맨스라는 장르 속에서 권태를 느끼는 두 연인에게 서로의 기억을 지우는 소재, 기억이 지워졌음에도 다시 사랑하게 되는 두 연인. 저는 로맨스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소재 자체가 대부분 비슷하고 주로 다루는 내용이 그렇게 공감 가지도 않아요.
무슨 감정을 느꼈건간에 둘이서 쌓았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립니다. 사랑이라는 존재 아래서 감정을 채우고 추억을 느끼고 의존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잊어버려요. 나도 결국 그와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지만 상대와 느낀 기억만이 사라지고 공허한 감정만 남아버립니다. 하지만 둘은 다시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 모든 비밀을 알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다시 속아보며 사랑을 합니다. 어쩌면 하나의 운명론, 누군가의 사랑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과거 상대와 만나기 전까지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야 한다는 소재와 그걸 다루는 연출과 역순행적 구성이 좋았어요. 제가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